32살의 학원강사 재섭.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채 아무도 읽어 주는 이 없는 글들을 끄적이고, 오로지 한 창녀와 독백에 가까운 소통을 할 뿐인 남자. 17살의 여고생 소희. 세상을 냉소하면서 원조교제라는 일탈을 감행하고 임신과 낙태로 자학의 우물에 빠져 버린 아이. 학원이라는 억압적이고 속된 장소에서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누구나 스쳐 지나가는 장소일 뿐인 버스 정류장에서의 만남과 어긋남을 거듭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결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의 프로듀서였던 이미연 감독은 1990년대 말 이후 등장한 트렌디 멜로영화들과는 구분되는 이 데뷔작에서, 어두운 소외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조금씩 서로 안으로 침윤되어 가는 러브스토리를 느릿한 리듬의 사실주의로 표현한다. 시네마스코프로 포착된 차갑고 무심한 도시의 공간들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절제된 묘사와 더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들이 터뜨리는 긴 오열과 서로에게 구하게 되는 무언의 위로는 교환가치와 성적 착취로 타락해 버린 원조교제라는 이름으로부터 그들의 사랑을 구원해 낸다. (주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