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웃음의 쓸모’라니.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렇게 맨날 웃어서 어떻게 영화를 만드니...” 같은 훈수였습니다. 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될 〈애국소녀〉를 만들면서도 논쟁적인 상황을 무마하려고 웃었던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웃음의 쓸모’라는 슬로건을 가진 올해 영화제의 트레일러 의뢰가 왔습니다. ‘영화를 만들며 웃음을 이렇게나 쓸모 있게 활용했으면서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냐’고 위로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웃음은 저의 가장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많은 여성 감독들이 웃음을 무기로 영화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무례한 말들에 웃을 수밖에 없던 순간들,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영화를 이끌어가야 했던 순간들, 따뜻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설득했던 순간들. 그렇게 웃음으로 고군분투하며 완성된 아시아단편 부문의 작품들을 트레일러를 만들며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옅은 미소를 짓게 하는 웃음부터 단호한 냉소로 세상에 맞서는 얼굴들까지. 빛나는 여성들의 얼굴들을 ‘포착’할 수 있는 특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웃음으로 트레일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작품 속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으로 많은 것을 무마해야 했던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끔 웃음 뒤로 숨어야 했던 일들도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웃지 않을 용기’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웃음이란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는 걸 잃지 않았으면 해요! 질척거리고 변덕스럽고 시끄러운 감정들도 어떻게든 ‘쓸모’가 있으니까요.

P.S 자신의 어린 시절 웃는 모습 비디오를 기증해 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남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