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하지야인 아버지와 조지아(그루지야)인 어머니 사이에서 나고 자란 감독 아나 지압시파는 〈경계의 자화상〉에서 압하지야-조지아 분쟁이 수놓은 과거의 기억들, 그리고 현재의 흔적들로 관객을 초대한다. 감독은 국경을 넘어설 수 없던 시간 속에서 오랜 세월 버려진 고향 집을 방문한다. 영화는 할아버지의 축구 경기 푸티지를 비롯한 가족의 영상과 사진, 아카이브 된 조지아 및 압하지야의 공식 TV 영상과 라디오 음성을 한데 엮고 교직한다. 시간을 관통하는 작업은 흩뿌려져 있던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를 호출하고, 복잡다단한 민족과 정체성의 상흔을 점차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람의 집에 뒤엉켜 같이 사는 거미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거미줄이 은유하듯, 이러한 기억과 역사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과거와 현재를 회상하고 복기하는 감독의 음성이 시종 덧대어진 영화에서, 희미한 듯 선명한 개인의 기억과 역사의 부산물은 지정학적 맥락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과거와 현재에 놓인 공백 혹은 여백을 오가는 〈경계의 자화상〉은 분쟁 이후 개인과 사회에 남겨진 것들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구술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떠한 것들이 올 수 있는지 담담히 질문하는 듯하다. [김서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