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캐롤』은 1952년 출간되었다. 당대 최초이자 유일한 해피 엔딩 레즈비언 소설이 세상에 나오자 팬레터가 쇄도했다. 단, 그들이 열광한 작가의 이름은 ‘클레어 모건’이였다. “당시 동성애 소설에는 아무도 실명을 쓰지 않았고 그게 현명한 거였어요.” 작가이자 하이스미스의 연인이었던 메리제인 미커는 회상한다. 에바 비티야 감독의 <러빙 하이스미스>는 하이스미스가 남긴 일기와 생전 인터뷰, 그가 사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탁월하고도 고독했던 작가의 삶을 재구성한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유기하다시피 했던 어머니를 계속 짝사랑하고 어머니를 위해 이성애자로 살아 보려 노력했던 하이스미스는 결국 어머니에게 『캐롤』의 존재를 숨기고 여행을 떠난다. 평생에 걸쳐 대륙 사이를 누비며 여러 여성과 사랑하고 이별한 그의 모험심과 결핍은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1989년, 하이스미스는 『캐롤』을 실명으로 재출간한다. 말년의 그는 자신의 삶이 “터무니없는 실수의 연대기”라고 말했지만, <러빙 하이스미스>는 이 오만하고 복잡하면서도 지독하게 낭만적이었던 창작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최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