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이스는 내내 달린다. 뭔가에 쫓기듯 안절부절못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에 위축되어 쩔쩔매는 것은 아니다. 밀린 집세를 독촉하기 위해 찾아온 집주인에게 자신의 고민이나 늘어놓고, 남자 친구와의 영화 약속에 늦었지만 사과 같은 것엔 딱히 관심 없다. 타인의 감정이나 사회적 책무보다 오직 지금 자신의 감정이 최우선인 아나이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나이스를 ‘어떤 바닷가’에 보내기까지 <아나이스 인 러브>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오해하게 만든다. 프랑스 로맨스 무비의 전형을 입은 이 영화는 자아도취적인 젊은 여성이 지성적인 나이 든 남자와 우연히 만나 섹슈얼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까지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영화의 무드는 아나이스가 그의 부인인 에밀리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동경하면서부터 변모해 간다.
배우이자 첫 장편 연출작을 선보인 감독 샤를린 부르주아타케는 아나이스의 다소 즉흥적으로 보이는 선택과 행위를 그저 바라보게 만든다. 그를 좋아하라는 것도, 지지하라는 것도 아니다. 아나이스의 존재와 불안 그 자체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아나이스를 시종 부드럽고 아늑하게 감싸는 자연광을 통해 감독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민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