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한 가족이 함께 만든 가족 스스로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가족이 사는 이 도시, 이 나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엄마 안나와 자식들로 이루어진 이 가족이 전쟁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은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전쟁 속의 삶은 아니다. 이들은 동물들과, 사진과, 음악과, 무엇보다 영화와 함께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가족에게 전쟁 동안 겪은 고통을 영화로 표현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표현된 영화와 삶은 끈끈하게 맞닿아있다. 이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 일은 삶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살아가는 일 그 자체다. 가족들이 촬영하는 여러 장면을 함께 따라가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전쟁 도중의 일상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들, 우리를 존엄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이 가족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쉽게 왜 이 도시를 떠나서 살아가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이 가족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이 도시에 남아서 도시를 다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영화를 찍어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보는 일이다. [최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