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화면 속 핸드헬드 롱 테이크가 펼쳐진다. 자그마한 공원에서 출발해 ‘가단빌라’로 진입한 후 계단을 오르는 움직임의 지속은 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터이자 감독인 ‘나’의 시선이다. ‘나’는 자살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숱한 계기가 있겠지만, 죽음 욕망의 표면적 이유는 가족의 부채다. 그렇다고 가족 중 누구를 원망하거나, 내면에 천착해 우울의 미로를 헤매는 것은 아니다. 대신 ‘나’는 가족이라는 타자, 특히 남성들의 잘못과 실수를 함께 짊어진 여성들을 관찰해 보기로 한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했을지도 모를 외할머니, 어머니라는 존재에 밀착해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든 마주해 보겠다는 용기 혹은 의지가 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인 셈이다. 이색적인 것은 이 영화가 그들의 삶을 연민하거나 그것에 동화하려는 정념을 억제하려 애쓴다는 점이다. 질문하되 논평하지 않고 기록하되 개입하지 않으며 공존하되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설픈 연대보다 시급한 것은 엄밀한 거리 두기인지 모른다. 엄중한 상황에 비할 때 의외로 무덤덤한, 아니 차라리 서늘하기까지 한 이 형상은 가족이라는 난제에 대한 이 영화의 재구성이자 엄습한 자살 충동에 대한 ‘나’의 쓰디쓴 성찰이다. 가족을 찍으면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혹은 가족에 종속된 자아에서 가족을 조망하는 자아로의 도약. [김현민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