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잃고 반항아가 된 열세 살 새미. 언니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 엄마를 잊은 것만 같고, 아빠는 새 애인까지 생겼다. 새미의 유일한 위안은 생전 엄마가 직접 녹음해 준 공주와 달 토끼에 관한 동화를 들으며 혼자만의 상상을 펼치는 것이다. 어느 날 어린이 파티 출장 마술사 마고를 만난 새미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살아 있는 토끼가 등장하는 마고의 마술쇼에 생각지 못한 위로를 받는다.
홍콩과 미국을 오가며 자란 케이트 챙 감독의 자전적 장편 데뷔작. 유년기에 부모의 이혼과 문화 장벽을 겪으며, 할아버지가 들려준 동화에 치유받은 경험을 토대로 구상한 작품이다. 현실의 고통을 강력한 위로로 승화시키는 이야기의 힘이란 주제가 도드라진다.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인 새미 가족의 배경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지만, 아이의 공상 장면엔 동서양 문화가 자연스레 섞여든다. 옥토끼 설화를 변주한 흑백 판타지 장면엔 옛 홍콩 무협 사극과 조르주 멜리에스의 고전 <달나라 여행 A Trip to the Moon>(1902)의 영향이 두루 엿보인다. TV 만화 시리즈 작가로 일하며 에미상 후보에도 오른 감독답게, 새미의 감정을 실사 영상 위에 낙서처럼 표현한 애니메이션 기법도 흥미롭다. 영화 <페어웰>(2019), <미나리>(2020) 등에 참여해 온 한국의 이용옥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미술을 맡았다. [나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