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이 옛것을 생각하고 연구한다는 두 문자의 결합이듯 <사랑의 고고학>은 고고학자인 영실의 과거를 돌이켜 그때 느꼈던 고통과 환멸, 수치의 시간들을 기어이 마주하게 한다. 이 과정은 뙤약볕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하고 종종 고통스럽지만, 뒤틀린 관계의 더께 속에 매몰되어 있던 자기 자신을 들추어내서 온전히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생기 넘치는 작업이다.
영실은 지난 8년간 매여 있던 인식과의 관계를 반추한다. 인식은 영실이 단단해 보여서 좋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영실을 불안해하고 의심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에두른 표현으로 영실을 헤픈 여자로 몰아붙이는 인식은, 영실이 단독자가 아닌 자신의 세계에 속한 대상이자 객체이길 바란다. 영실을 둘러싼 남자들은 때마다 영실을 가르치려 하고, 영실이 느끼는 감정마저 자신의 언어로 교정하려 애쓴다.
영화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온한 관계의 자장 안에 머물렀던 영실을 질책하거나 합리화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자아가 위협받는 느낌을 감지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발화하기 시작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 서툴지만 단호한 첫 걸음을 내딛은 영실이라는 여성을 응원하고 축하하게 만든다. 인물의 깊은 내부로 함께 내려가서 그의 아픔과 본연의 결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돌아오는 여정. 168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이 체감되지 않을 만큼 밀도 높다. [김현민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