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빨간 머리를 하고 빨간 자동차를 몰며 빨간 술을 마신다. 속옷도 화려한 무늬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 그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는 부담이자 낙인처럼 들러붙는다. 문제는 그가 이 끈덕짐을 딸 이정을 향한 폭력으로 분출해 오면서 축적되었다. 서서히 차오르던 모녀 사이의 유독 물질이 폭발한 사건은 마트 주차장에서 벌어진다. 이정은 수경의 자동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후 이 사고가 의도적인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정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놓고 죽어 버리라고도 말하는 수경을 향해 반격을 준비한다.
김세인 감독의 첫 장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제목에서부터 딸과 엄마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내밀한 혼란을 드러낸다. 이를 글자 그대로 묘사한 오프닝의 속옷 빨래 신은 짧은 찰나에 모녀간의 감정적 굴레를 관객에게 설득시킨다. 뒤이어 영화는 두 여자가 집 안팎에서 맺는 관계들을 엮어내 도리어 모녀라는 태초의 관계가 가진 영향력을 인지하게 한다. 서로를 원하고 원망하는 두 여자의 치열한 대화를 일상 속 재난처럼 연출하는 감독의 힘은 물론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고 있는 딸일 뿐”이라는 엘레나 페란테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배우 양말복의 존재감이 대단하다. [남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