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는 약 6만 년 전부터 아시아에서 호주로 건너와 살기 시작했으리라 추정된다. 한데 1788년부터 영국에서 이주한 백인들이 애버리지니의 땅을 빼앗고 실질적인 말살 정책을 폈다. 한때 75만 명에 이르렀던 애버리지니는 20세기 초에 약 3만 명으로 줄었다. 1970년대까지, 정부는 원주민 아이들을 친부모에게서 떼어 내어 고아원에 보냈다. 1997년에야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을 시작한, 이른바 ‘빼앗긴 세대’가 겪은 일이다. 

원주민 활동가 에시 코피는 실의와 무기력에 빠진 이웃을 돌보고, 고아가 된 아이들을 입양하여 고유 문화를 전수하며 길렀고, 애버리지니의 삶을 영화로 기록했다. 영화가 역사 속에서 원주민들을 통제하고 대상화하는 데 주로 이용되었기에, ‘원주민 영화’는 카메라를 경계하며 매체 속성을 실험하여 영화사를 반추하는 길을 걸어 왔다. 호주 원주민 영화의 초창기 주요작인 이 작품도 주류 서사 기법을 탈피한 ‘일인칭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 일상과 심연의 간극을 오가는 이 영화의 몽타주는 범상치 않다. 이를테면 부엌과 공장을 오가는 코피 장면은 혁명기 러시아 영화처럼 아찔한 정동을 안긴다. 아이들에게 재니스 조플린의 ‘나와 바비 맥기(Me And Bobby McGee)’를 이야기하는 코피는 빼어난 포크 뮤지션이기도 했다. 영화에 흐르는 노래들은 대부분 코피가 직접 쓰고 불렀는데, ‘원주민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떤 체험인지를 고귀하게 들려준다. [신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