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는 휴가를 받아 떠난 여행지에서 또 일하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왜 그렇게 해야 할까. 뿌옇게 가라앉는 의문들을 시원스레 풀어주지 않고 영화는 마치 가까이 다가가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다는 듯 거리를 둔 채 희수의 겨울을 따라간다. 

툭툭 단절된 듯한 영화의 흐름은 희수의 일터와 그가 떠난 여행지를 교차하지만, 공장 기계 앞에 붙박인 그와 횟집 테이블을 치우는 그는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노동을 수행하는 법만 배웠을 뿐 쉬고 여행하는 경험은 익히지 못한 희수가 무감하고 표정 없는 기계들 같다고 느낄 때쯤, 영화는 그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 사건, 다 펼쳐 보여 주지 않는 서사의 공백을 정물 사진 찍듯 멈춰 바라본다. 극도로 절제된 표현과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시선, 장송곡의 통주저음처럼 반복되는 기차 장면이 수없이 삼키고 삼킨 뒤 ‘무성통곡’이란 시로 겨우 내보이는 희수의 내면과 이어지며 먹지를 빨아들인 듯한 풍경의 단조로움에 숨죽인 아픔을 불러일으킨다. 

적막한 밤의 출근길도, 흥분과 설렘이 지워진 여행지도 아닌, 더 멀리 “검푸른 길”을 가야 하는 희수. 영화는 여전히 철로 하나쯤의 거리를 두고 서서 그가 오래 바라본 꺼진 생명의 빛을 모아 인사를 건넨다. “부디 어여쁜 그 뺨으로 다시 하늘에서 태어나 다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길고 질기게 우는 한 슬픔이 지금 여기, 우리 곁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김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