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가부장인 아버지, 오빠를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어머니, 가부장제의 상속자로서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가능한 탈선을 시도하는 언니. 학력 중심주의를 세뇌하는 담임선생님에 의한 억압적인 학교. 그 속에서 은희는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한문학원 교사 영지는 은희에게 각별한 인상을 남긴다. 영지는 은희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주고, 자신이 싫어질 때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의미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은희는 각자의 학창시절을 대입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처럼 보이면서도, 누구와도 닮지 않은 특별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은희의 이상함이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 순간에 얼마만큼 공감하느냐에 따라 영화에 관한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억압을 함께 견디며 그 시기를 지나가는 인물들이, 마피아가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하듯 암묵적으로 서로 소통할 때 따뜻하고도 애달픈 정념이 피어오른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