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더니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정작 이 불길한 바람의 진원지는 진아의 가족 내부에서부터 불어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빠의 수첩에서 알 수 없는 단어 ‘링링’을 발견한 진아는 이것이 아빠의 바람의 증거가 아닐까 의심한다. 권태로워 보이는 엄마는 그 권태에 비례하겠다는 듯 집안 곳곳에 화초를 들여놓았다. 영화 곳곳에 습한 바람과 비릿한 물의 이미지가 불순하게 넘실댄다. 휘청대는 아빠의 낚싯대, 펄럭이는 진아의 치맛단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진아의 불안과 의심의 실체는 태풍이 몰고 온 거친 빗줄기와 기세 좋게 조우한다. 인물 각각의 욕망과 감각을 과감하게 서사화하고 이미지화한 감독의 재능이 돋보인다.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