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와 캣우먼의 모델이 된 고전 할리우드 시기의 스타 헤디 라머는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와 떠들썩했던 스캔들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근대 통신기술의 혁신을 이끈 무선 보안 신호 체계를 발명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영화는 헤디 라머의 생전 인터뷰, 화면 자료들, 그리고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이자 여성 발명가로서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그녀의 삶을 재조명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배우였던 헤디 라머는 나치의 학살을 피해 할리우드로 넘어간 뒤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틈틈이 발명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녀의 발명품은 편견으로 결국 기각되고 오랜 뒤에야 빛을 보게 된다. 영화는 발명가로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며 우리가 몰랐던 헤디 라머의 열정에 대해 알려주는 한편, 이 과정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자신들이 고용한 배우들을, 특히 이민자 출신의 여배우를 어떻게 이용하고 혹사시켰는지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지만, 영화 속 그녀의 당당한 생전 육성이 말해주듯, 영화는 비운의 여주인공 헤디 라머가 아닌 20세기의 역동적 근대, 그리고 할리우드라는 거대 시스템에 맞서 싸운 여성으로 헤디 라머를 기억한다. 그녀의 후배 배우인 할리우드의 스타, 수잔 서랜든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배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