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베를린영화제 / 1998 선댄스영화제, 토론토영화제

에이다 바이런 킹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의 딸이자 \'해석기관\'이라 불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다. 매혹적인 공상과학적 요소와 양식화된 외양이 어우러진 이 독특한 작품에서 에이다는 에미라는 여성이 광적으로 집착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에미는 에이다 바이런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여 시간을 뛰어넘고자 한다. 에이다와 에미는 평행 우주 속에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에이다와 에미의 어머니에게는 공통적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 역을 한 배우가 연기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에이다와 에미의 인생이 매우 닮아있기도 하다.

천재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뉴미디어 아티스트인 에미는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경유해 과거에 접속하고 이를 통해 과거 인물들과 소통하게 해 줄 디지털 매개체를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어느 날, 에미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임신을 중단하려고 하지만 파트너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출산 준비와 일을 양립하게 된다.

 에미는 디지털 매개체인 사이버 새를 만드는 것에 성공하고, 이 사이버 새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블레이스와 에미를 연결해 준다. 사이버 새가 에이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에미는 에이다의 삶을 듣고 볼 수 있게 되고, 둘 사이에 대화도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다가 결국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에미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을 통해 에이다의 삶을 영속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Conceiving Ada\'라는 원제는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에이다 러블레이스>는 페미니즘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흥미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고 이 세계 안에서 세 명의 뛰어난 여성들이 서로 연결되고 하나로 엮어진다. 그들은 바로 컴퓨터가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에 컴퓨터 언어를 상상할 수 있었던 에이다 러블레이스와 영화의 주인공인 에미,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 뉴미디어 작업을 지속해 온 감독 린 허쉬만-리슨 본인이다. 영화는 이 세 사람의 겹쳐짐과 갈라짐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손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