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베를린영화제 | 2013 부산국제영화제

시놉시스

티후아나에서 일평생을 근무한 라파엘과 리디아는 부당하게 인권과 존엄성을 희생당한다. 라파엘은 서류 작성을 잘못해서 퇴직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리디아 역시 고용주가 유산 전체를 반려견에게 상속하여, 반려견이 죽어야만 그 유산을 받을 수 있는데... 라파엘은 회사를 상대로, 리디아는 반려견을 상대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홀로 투쟁을 시작한다. 이러한 투쟁은 흥미롭게도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데...

프로그램 노트

라파엘과 리디아는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평생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왔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서로 만나거나 소식을 나누는 사이가 아닌 이 둘은 불평 한마디 없이 각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조용히, 그러나 빈틈없이 해내는 무산자,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다. 라파엘은 거대 다국적기업 필립스의 청소노동자고, 리디아는 손끝 하나 까딱하는 것까지
 남의 손에 맡기고 살아가는 부잣집 가정부다. 이들의 노동은 불법이 아니고,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남을 위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인 은퇴를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그날이 왔을 때, 라파엘은 깔끔하게 옷 차려입고 모처럼 새신을 신고 회사 관리직 임원들 앞에 앉아 퇴직금을 청구한다. 더 이상 남들을 위해 쓸고 닦지 않아도 그동안 자신이 노동한 댓가가 차곡차곡 쌓여 모인 퇴직금으로
 살게 되는 그날, 얼마나 바라던 날이겠는가? 휠체어 신세가 되어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게 된 부잣집 마나님 손발을 대신해 집안일
 돌보는 것도 모자라, 주인 마나님이 애지중지하는 개 프린세스가 가장 아름다운 것만 보고, 듣고, 먹고, 쉬게 하는 일을 도맡아 왔던 리
 디아는 마침내 고용주 마나님이 죽던 날 자신이 받게 될 상속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깊이깊이 애도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자본
 은, 고용은 그들을 놓아주려하지 않는다. 어둠을 밝히는 전구를 만드는 기업은 라파엘의 삶을 캄캄하게 하고, 개조차 공주 대접 받는 세상에서 리디아와 동료들은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가난도 팔자려니 하며 그렇게 체념할 수만은 없다. 평생에 걸친 노동에 대해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조용하지만 후련한 반격으로 한 방 먹이는 <우리는 불법노동자>의 또 다른 제목은 ‘필립스와 프린세스’, 그러니까 ‘자본과 부르주아’가 되면 좋을 것이다. 노동은 불법이 아닌데 고용이 불법인 세상은 온통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그 장벽에 금을 내는 것은 노동자의 자존심이다.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