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부조리함과 고통에 대해 깊이 통찰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떠오르는 반가사유상의 미소에 착안한 이 영화는 갑작스러운 삶의 위기를 맞은 한 여성의 행로와 선택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사진가인 소정은 어느 날 자신이 튜블러 비전, 즉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시야가 계속 좁혀 들어가 실명에 이를 수도 있는 병이다.‘ 튜블러 비전’‘, 가족’‘, 미소’‘, 비행’등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소정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그녀가 속한 현실과 그녀 내면의 열망을 비춘다. 그녀가 관계 맺는 현실은 그녀에게 이유 없이 찾아온 튜블러 비전만큼이나 답답하고 부조리하다. 그 답답함 만큼이나 그것을 넘어서려는 소정의 내적 열망도 강렬하다. 소정은 시력을 잃어 가지만 천여 년 동안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경주의 고분 속에서 비상하는 여신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소정 또한 홀로 비상을 꿈꾼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감독과 배우가 각각 이 영화의 프로듀서와 주연배우로 참여함으로써 박경희 감독의 이 장편 데뷔작을 지지했다.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던 이 영화의 제작진은 초저예산의 한계를 밀쳐내는 여성영화인의 저력을 증명한다.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소개되어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