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 중심주의를 향한 바바라 해머의 계속되는 도전이라 할 만한 신작 <연인, 타인>은 동성의 ‘연인’이자, 사회적 ‘타자’였던 프랑스 출신의 초현실주의 예술가 끌로드 커훈과 마르셀 무어의 인생을 추적한다. 끌로드와 마르셀은 최초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예술가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창작활동을 통해 독일의 파시즘에 저항한 운동가였으며, 이복자매지만 사회적 금기를 뛰어넘은 연인이었다. 바바라 해머는 전통적 다큐멘터리 요소인 인터뷰와 역사적 기록물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두 예술가들의 초현실주의적 작품과 재연 배우의 연기를 콜라주하는 등 새로운 양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에서의 경험을 끊임없이 다큐멘터리에 접목시키는 바바라 해머의 연출은 다큐멘터리가 지닌 리얼리즘의 신화를 해체하며 그 외연을 확장시킨다. 끌로드와 마르셀을 향한 뜨거운 오마주라 할 <연인, 타인>의 마지막, 4만 달러에 낙찰되는 그녀들의 작품이 경매되는 현장을 담은 에필로그는 타자화되었던 여성의 예술세계가 지금, 이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 증언한다. 그것은 ‘연인/타인’이었던 두 여성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감독의 애정과 충돌하며 놀라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