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대표적인 배우 조이스 췐의 감독 데뷔작 <말리>는 서른 살의 커리어 우먼 말리의 삶을 통해 대만의 현대 여성과 갈등하는 신/구세대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국 영화산업의 침체로 제작활동마저 뜸해진 대만 영화계에서 새로운 여성감독의 등장은 반가운 소식이라 할 것이다. 애인과의 데이트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말리는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영혼은 7일 동안 말리의 주변을 맴돌고,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어 보이는 딸이 마땅치 않다. 직업적 성공, 남자친구와의 결혼, 가족과의 관계로 의기소침한 말리에게 사후에도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7일 후, 어머니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는 순간, 말리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무게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말리>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통과의례가 가져다주는 자아성찰의 순간에 주목한다. 말리로 대변되는 대만 여성의 현실이 보여주는 보편성은 바다 건너 이곳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