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프랑스를 무대로 헤어진 한국인 해외 입양아 남매의 사연이 펼쳐진다. 1991년에 제작된 이 영화에서 베를린 장벽은 삼팔선으로 갈라져 있는 한국을 비추는 일종의 거울이 된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무엇이 ‘우리’ 한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영화는 다층적인 정치적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프랑스 군인인 양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한 영희는 남한을, 동독 사회주의자인 오빠는 북한을, 영희를 학대한 양부와 오빠를 쫓는 프랑스 경찰은 국제적 이해관계로 끈질기게 통일을 방해하는 제국주의 국가를 상징한다. 당대의 대표적인 정치적 영화인 <베를린 리포트>는 민족에 대한 두 가지 상상을 보여준다. 첫째는 영희와 오빠처럼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혈연 공동체이기에 반드시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혈연 중심의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둘째는 짧은 해후를 한 이후 다시 강제로 헤어져야만 했던 영희와 오빠처럼 남한과 북한 모두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싸움에서 희생자라는 희생자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과거와 현재, 영희의 집과 바깥, 영희, 오빠, 성민, 프랑스 양아버지 등 다른 시공간과 등장인물을 스태디 캠으로 한 번에 연결한 장면은 한국영화사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