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설가와 사랑에 빠지는 중산층 중년여성의 심리를 그린 <단발머리>는 50년대 <자유부인>에 비견될 만하다. 주인공 선아는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되는 여성에서 남성의 소유에 저항하여 욕망의 폭탄을 제조하는 여성으로 변신하다.
 <자유부인>의 남편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이었다면 선아의 남편은 60년대 후반의 사회적 가치를 대변하듯 금전 물신주의에 찌들린 사람이다. 선아는 단발머리 시절의 첫사랑이었던 <푸른 입술>의 저자와 재회하게 되고 밀애가 시작되나 첫사랑의 기억이 선아의 장식적인 삶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외출까지도 남편의 허락을 받는 선아의 현실이 부각되면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던 시시한 첫사랑의 기억은 존재를 반추하고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발전한다. 머리채를 잡아 자르는 남편에 저항하여 스스로 가위를 들고 단발머리로 다듬어 가는 선아의 행위는 멜로드라마의 한계에 도전한다. 자폐와 자학을 넘어서 미래를 향하여 당당히 걸어나가는 선아의 동생 미아의 모습에서는 어설픈 지식인이 책임있는 자아로 성장하는 성장영화의 면모도 읽을 수 있다. 당대의 만화, 대중음악, 대중소설 등으로 수놓는 이야기의 감칠맛으로 <단발머리>는 대중문화를 통해 60년대를 읽어내는 문화사적 텍스트가 되었다. (남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