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열중하는 중년 의사와 아무런 할 일도 없는 젊은 아내. 남편이 일에만 몰두하자 미지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 중단했던 미술작업을 재개한다. 미술 작업은 미지에게 생기발랄한 연애와 자유의 숨결을 꿈꾸게 한다. 미지의 변모와 이에 따른 갈등으로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고 미지는 옛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미지의 개인전 개막식날 던져지는 “의사의 아내가 고독하냐, 예술가의 남편의 고독하냐”는 질문은 영화 속의 연극 <인형의 집>과 겹쳐지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여성의 처지를 대변한다. 짐짓 안정된 가정생활의 윤리는 여성의 욕구를 표출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Born to be Wild’의 선율에 맞춰 고고댄스를 추면서 통행금지를 잊는 미지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공간은 없다. 다만 해결되지 않는 욕망으로 채운 그림을 기다리는 벽이 있을 뿐이다. 미지를 예술가로 설정하는 구성은 ‘신여성’에 대한 상투화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치명상을 입은 애인을 살려준 남편에 대한 보답으로 남편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미지가 환상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보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남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