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슈(女書, 여서). 남성들의 전유물인 언어를 금지당한 여성들의 또 다른 언어이자, 오직 여성들만이 배우고 읽고 쓸 줄 알았던 비밀스러운 언어. 다소 생소한 단어일 수 있지만 ‘암클’로 불려 온 조선의 한글, ‘온나데’(女手, おんなで)로 불려 온 일본의 히라가나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누슈의 마지막 화자인 허옌신의 뒤를 이어 오늘날까지 누슈를 지켜오고 있는 두 여성 계승자 후신과 우시무를 주인공으로 한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의 그림자를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후신과 일을 그만두고 아들을 가질 것을 종용받는 우시무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누슈의 기원에 서린 비극의 역사가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에 대한 중국 여성의 설움을 담고 있는 이 언어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이어주며 내려오는 연대의 역사이자 견고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끈질긴 독립의 역사이다.
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인 양 유에칭 감독의 다큐멘터리 〈누슈: 여성의 언어〉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볼만한 영화. [이선아, 시네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