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엘리스의 토끼 굴이나 미궁 속에 빠진 듯하다면, 그것이 곧 〈페트롤〉이 원하던 바이니,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미세하고 낯선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우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천연스럽게 던지는 이 영화는 시종 모호하길 자처한다. 모든 것이 다른 무언가를 암시하는 신호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미스터리로 가득 찰 수 있다. 러시아 태생으로 호주에서 자란 감독 앨레나 로드키나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 〈페트롤〉을 준비하며 고딕 호러 장르의 유령 이야기, 에드거 앨런 포와 헨리 제임스의 작품들, 고이즈미 야쿠모의 〈괴담〉(1904), 나데즈다 코셰베로바의 〈신데렐라〉(1947)에 영감을 받았음을 밝혀왔다. 이것이 힌트가 돼줄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영화학도 에바는 우연히 만난 묘령의 여인 미아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홀연히 등장해 윙크 한 번으로 마법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는 신비한 존재 미아. 에바는 그런 미아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지금 찍고 있는 영화와 앞으로 만들 영화에 관한 접근을 새로이 하며, 자기 자신과 만난다. 영화 만들기와 창작자의 자아 찾기라는 고전적 주제를 으스스하고 장난기 가득한 무드로 꿰어낸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품이다.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