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내외 여성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영화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영화제 경쟁 섹션이다. 기존의 한국경쟁, 국제경쟁 섹션을 통합, 세계 영화의 너른 지평 속에서 가장 최신의 여성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장르 규정이 무색하리만치 과감한 영화적 시도의 작품부터 수려한 서사 구성을 보여주는 경우까지. 한국을 비롯해 덴마크, 독일, 미국, 브라질, 스웨덴, 아르헨티나, 중국, 캐나다, 파나마 10개국에서 제작된 12편의 반가운 영화, 새로운 얼굴들이다. 

7편의 작품이 아시아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브라질 출신의 모아라 파소니의 <엑스터시>(2020)는 정치적 격동기인 1990년대 브라질을 배경으로 거식증에 걸린 소녀를 통해 불확실한 세계와 그녀 내면의 소용돌이를 그린다. 대단히 과감하고, 그만큼 섬세한 촬영과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논픽션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다큐멘터리 각본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아라 파소니는 올해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페트라 코스타의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2019)의 공동 각본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경쟁작으로 공개된 에바 마리에 뢰드브로의 모험심 가득한 다큐멘터리 <내가 죽기 전까지, 사랑>(2019)도 인상적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 교외의 빈민촌에 사는 여성의 내밀하고 복잡다단한 열망을 그리며 가족 내에서 사랑과 의존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소개된 스웨덴의 리아 히에탈라, 한나 레이니카이넨의 <언제나, 앰버!>(2020)는 사회가 재단하는 경직된 성정체성의 스펙트럼을 넘어서며 열린 자세로 마음의 동세를 따르는 10대들에 관한 기록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퍼스펙티브 도이치스 키노(Perspektive Deutsches Kino) 부문에 소개된 불가리아 출신의 엘리자 페트코바의 <어 피쉬 스위밍 업 사이드 다운>(2020)도 도덕, 윤리의 이름으로 금기시해온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성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1996년생인 아르헨티나의 솔 베루에 조 피숑 리비에르는 <마마, 마마, 마마>(2020)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서 국제심사위원 특별 언급됐다. 여름날, 3대에 걸친 여성들이 한정된 공간에 머물며 슬픔과 위로의 공동체로서 거듭나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담았다. 올해 로테르담국제 영화제 밝은 미래 부문 경쟁작이었던 아나 엘레나 테헤라의 <판키아코>(2020)는 노스탤지어, 기억, 정체성의 문제를 에세이 필름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적었던 파나마 영화로 제국주의 식민의 역사, 원주민 사회의 신화 등이 절묘하게 뒤섞여 우리를 시네마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단편 <피쉬>(2016), <밀크>(2017) 등으로 삶의 무게를 오롯이 떠안은 여인들을 주목해온 캐나다의 헤더 영의 <속삭임>(2019)도 있다.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에 빠진 장년 여성이 동물에 의존하게 되는 과정을 다큐-픽션으로 완성했다. 

한편, 중국의 저우 쑨의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2019)은 고통의 원류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한 소녀의 분투기다. 북경전영학원에서 영화 연출 석사 과정을 마친 저우 쑨의 탄탄한 서사 전개가 돋보인다.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 상을 받은 정 루 신위안의 <그녀 방의 구름>(2020)은 과거가 된 황폐한 공간, 적막한 거리, 쓸쓸한 소녀의 심상이 흑백의 화면 위에서 조우하며 한 편의 영화 시(詩)가 된다. 3편의 한국 영화 역시 강렬하다. 한 여성의 중독에 가까운 관계 맺기와 그 속절없는 연쇄의 과정을 집요하게 그린 정지영의 <은미>, 열망한 바가 끝내 좌절됐을 때조차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인물을 목격 하게 해준 손모아, 안정연의 <가만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과 중첩으로 고통의 연유를 추적하고 세계를 재구성한 강예은의 <ㅅㄹ, ㅅㅇ, ㅅㄹ>이다. 치열하고 절실한 질문으로 자기 세계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12편의 매혹적인 영화가 관객의 세계와 만나길 기대한다. 정지혜 / 프로그래머